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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고요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봄

by 엑상프로방스 2025. 4. 1.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아침, 독일 남서부의 고성 도시 하이델베르크.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 나는 숨을 멈췄다.


이곳의 공기는 평온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리고 그 낯섦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었지만,

사실 그날 나는 조금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품은 도시

하이델베르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이 도시는 1386년 설립된 독일 최초의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곳이다.


넥카강 너머로 붉은 지붕이 펼쳐진 구시가지, 중세가 현재를 품고 있는 풍경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고성 근처에서는
수 세기에 걸쳐 학자, 철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이
지식과 사유를 나눴다고 한다.


그 오래된 흔적들이 골목마다 스며 있다.
역사란 결국 인간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낸 감정의 층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낭만적이면서도 어딘가 묵직한 느낌을 준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치유의 시작이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보는 넥카 강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풍경이 너무 완벽해서일까,
문득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 많이 참아왔구나.’


하이델베르크 성 언덕에서 내려다본 넥카강과 구시가지. 감정이 흘러가는 듯한 강물

성찰은 늘 고요함 속에서 찾아온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의식하지 않는 감정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내 감정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았다.


그리움, 불안, 외로움… 그리고 안도감.
그 감정들이 하이델베르크의 바람에 실려 흘러가는 걸 느꼈다.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하이델베르크 명소 TOP 3

📍 하이델베르크 성 (Schloss Heidelberg)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붉은 고성.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 건축물로, 내부 투어는 유료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넥카강과 구시가지 풍경은 누구나 감탄할 만하다.

 

📍 카를 테오도어 다리 (Alte Brücke)
‘구 다리’로 불리는 이 석조 다리는 1788년 완공되어 지금까지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노을 질 무렵 이 다리를 건너면, 어느새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 철학자의 길 (Philosophenweg)
넥카 강 건너편 언덕에 위치한 산책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사유를 위해 걷던 길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도 자연스레 생각에 잠겼다.


철학자의 길 어귀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 나무 사이로 조심스럽게 드러나는 뷰가 인상 깊다


하이델베르크 가는 법 & 추천 일정

🚉 가는 방법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약 1시간 20분 소요 (ICE 또는 RE 이용)
하이델베르크 중앙역 도착 후, 버스나 트램으로 구시가지 이동 가능

 

🕒 추천 일정
당일치기로도 가능하지만 1박 2일 여행을 추천
낮에는 고성과 구시가지 탐방, 밤에는 다리 근처 야경과 로컬 펍 투어 추천

 

🍽 맛집 팁
‘슈넬 임비스(Schnell Imbiss)’에서 먹은 커리부어스트는 의외의 감동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작은 슈니첼 가게들도 골목마다 숨어 있음


나를 위한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나를 마주하는 과정’

여행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바꿔준다.
한국에서는 일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우리는 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시간조차 갖기 어렵다.


카를 테오도어 다리 위에서 바라본 도시, 흐린 하늘 아래 더욱 고요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며칠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건 아마,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온 후에도 남는 건 사진보다 감정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창밖 구름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다시 바빠지겠지만,
이 기억은 나를 다시 일으켜줄 거야.’

하이델베르크는 내게 큰 전환점을 준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나를 아주 조용히 안아주었던 도시였다.
그 고요함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이제 나는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